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죽림칠현 김부식, 역사는 흐른다

by podeureseoa 2025. 4. 23.
반응형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유학자,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정사인 『삼국사기』를 편찬한 사학자 김부식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합니다.

고려의 문신이자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김부식(金富軾, 1075년 ~ 1151년)은 고려 인종 때 활동한 대표적인 문신이자 유학자,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정사(正史)인 『삼국사기』를 편찬한 사학자입니다. 그는 문벌 귀족 가문 출신으로, 뛰어난 학문적 능력과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고려 조정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생애와 가문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증조부 김위영은 고려 태조 때 경주의 주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아버지 김근은 좌간의대부까지 올랐으나 일찍 사망하여 편모 슬하에서 성장했습니다. 형 김부일, 김부필, 동생 김부의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 관료로 진출했으며, 특히 김부식과 형제들은 한림직을 맡아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의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 시호는 문렬(文烈)입니다.

주요 활동

김부식은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문신으로서 활약했습니다. 정치가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여 인종 때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수충정난정국공신에 책봉되고, 문하시중 등 최고위 관직에 올랐습니다. 특히 인종의 명을 받아 『삼국사기』 편찬을 주도하여 1145년에 완성한 역사가로서의 업적이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또한 《예종실록》과 《인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습니다.

『삼국사기』 편찬

김부식은 1145년, 고려 인종의 명에 따라 삼국 시대의 역사(신라, 고구려, 백제)를 정리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로, 기전체(紀傳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기, 지, 표, 열전으로 총 50권에 달합니다. 삼국사기는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신라 중심의 역사관을 보여주며, 불교와 신화적 요소는 배제되고, 합리적이고 정제된 기록을 강조합니다. 일부 고구려·백제 사서가 전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치가로서의 김부식

김부식은 문신으로서도 뛰어난 정치 능력을 발휘하였고,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진압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묘청의 난(서경 천도 운동, 1135)을 '역모'로 간주하고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이 사건은 유교적 합리주의(김부식) vs. 풍수·불교 중심 자주사상(묘청)의 대립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후 고려 정치의 중심에서 보수적 개혁 노선을 견지했습니다.

평가 및 역사적 의의

김부식은 뛰어난 문장과 학식으로 당대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삼국사기』 편찬을 통해 고대사 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사료를 제공하고,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역사 서술의 기준과 틀을 제시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묘청의 난 진압 과정에서의 강경한 태도와 유교 중심적인 역사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그는 정치적·사상적 대립(묘청의 난)에서 보수 유학자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김부식은 1151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후 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그의 문집 20권이 있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무신정변 이후 정중부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