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예송논쟁 현종, 역사는 흐른다

by podeureseoa 2025. 6. 5.
반응형

예송논쟁이란 단어, 한 번쯤 들어보셨나요? 오늘은 조선의 18대 임금 현종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이 붕당 정치로 접어들던 격동의 시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조선 제18대 왕, 현종은 누구인가?

이름: 이연(李淵)
출생-사망: 1641년 ~ 1674년
재위 기간: 1659년 ~ 1674년 (15년)
부친: 효종 / 모친: 인선왕후
왕비: 명성왕후 김씨
능: 숭릉 (경기도 남양주시)

19세에 즉위한 현종은 조선 정치가 본격적인 붕당 체제로 접어드는 과도기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예송논쟁 – 조선을 흔든 예(禮)의 정치 싸움

예송논쟁이란?
왕실의 장례 예법을 두고 벌어진 서인과 남인의 정치 싸움으로, 단순한 예의 해석을 넘어 정치 권력 다툼이었습니다.
제1차 예송논쟁 (1659, 기해예송)
배경: 효종 사망 후, 자의대비(현종의 조모)의 상복 문제
서인 주장: 1년 상 (왕이지만 적통 아님)
남인 주장: 3년 상 (왕의 어머니가 죽었으므로 정통론)
결과: 서인의 주장 채택 → 서인 우세
제2차 예송논쟁 (1674, 갑인예송)
배경: 인선왕후(현종의 모친) 사망
서인 주장: 1년 상
남인 주장: 3년 상
결과: 남인의 주장 채택 → 남인 세력 등용 확대
이 두 차례의 논쟁으로 조정은 완전히 붕당 체제에 들어서며,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현종의 통치 – 당파를 넘어서려 한 군주

정치 기조: 온건한 왕권 강화, 중립적 태도 유지
민생 안정: 지방 감찰 강화, 세금 제도 정비
군사 정책: 북벌보다 국방 체계 정비 집중
한계: 당쟁 조정에 한계, 왕권 영향력 약화

현종은 평화를 원했지만, 그의 중립적 태도는 오히려 갈등을 조정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평가 – 현종, 균형을 꿈꿨으나...

정치
긍정: 왕권 안정화 노력
부정: 붕당 갈등 조정 실패

문화
긍정: 유교 예법 중시
부정: 유학 명분에 정치적 피해

민생
긍정: 세제 개편, 빈민 구제
부정: 큰 개혁은 없음

리더십
긍정: 온화한 성격, 균형 중시
부정: 결단력 부족

“예(禮)를 논하다 정치를 잃었다.”
현종의 시대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무리 – 예송의 중심에 선 군주

현종은 조선의 외치에서 내치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군주였습니다.
예송논쟁은 단순한 장례 문제가 아니라, 정치 세력 간 주도권 다툼의 상징이었죠.
반응형